Lydie Solomon Pianiste

리디 솔로몽 (인터뷰) – 뉴스엔

10 septembre 2017

리디 솔로몽 “한국인 열정 호기심, 유대인 지혜, 프랑스인 감성을”(인터뷰)

예사롭지 않은 활동으로 유럽에서 주목받아온 아티스트가 어머니의 나라로 발걸음을 향했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8월의 끝자락에서 한국계 프랑스 피아니스트 리디 솔로몽(36)을 만났다. 가을이면 생각나는 ‘피아노 시인' 쇼팽을 닮았다. 올해 하반기 본격적인 한국 활동 준비 차 방한한 그가 또렷한 발음으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어릴 때부터 끼쟁이였다. 혼자 거울을 보며 연기하듯 놀기를 좋아했다. 2세 때 베토벤 9번 ‘합창' 월드 투 더 조이를 한 손가락으로 치기 시작해 어머니를 깜짝 놀래켰다. 5세에 파리 에콜 노말 드 뮤지크에 입학했고, 15세에 양성원·조성진 등을 배출한 파리고등국립음악원에 입학, 18세에 수석 졸업했다. ‘신동 피아니스트’란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졸업 후엔 일부러 콩쿠르에 참가하질 않았어요. 보다 완벽한 테크닉에 치중하는 콩쿠르에 반감이 들기 시작했거든요. 예술적 영혼이 있으면 테크닉은 따라온다고 생각해요. 연주에서 테크닉에만 집중하면 예술이 되지 않는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그 뒤로 프랑스 명문학교인 헨리4세 고등학교를 거쳐 프랑스 최고 비즈니스 스쿨로 꼽히는 ESSEC MBA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피아니스트 활동과 병행하며 프랑스 기업을 위해 리더십 워숍 강연 활동을 펼쳤다.

그녀는 또 다른 열정으로 액터스 스튜디오에서 연기를 공부했고, 당시 교수였던 감독 이본 마르시아노의 영화 ‘Vivre!(삶)'에선 한국인 피아니스트 역으로 주연을 맡기까지 했다. 이 작품은 2009년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에서 개봉됐다. 이 인연으로 또 한편의 영화와 드라마, 프랑스 유명 토크쇼 등에 출연하며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다. 그 사이 소설 4권을 출간하며 작가로도 등단했다.

“열정과 호기심이 많아요. 많은 영감을 가지고 있고요. 연주활동은 계속 해왔지만 삶에 대한 관심이 너무 커서 다양한 도전을 해왔나 봐요. 하지만 제게 제일 중요한 건 소통이에요. 연주뿐만 아니라 노래, 연기, 글쓰기 등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걸 너무 좋아해요.”

피아노 칠 때가 가장 행복하다. 여러 나라에서 콘서트와 리사이틀을 할 때 공연 도중 관객과의 대화 때 희열을 느낀다. 작곡가의 인생, 작품 소개를 연기를 하면서 설명해주곤 한다. 관객들은 다른 공연에서 접하지 못한 내용에 뜨거운 반응을 보낸다.

“성악가와 달리 피아노를 칠 때는 연주자의 옆모습만 보이잖아요. 소통하기가 힘들죠. 그냥 곡만 칠거면 CD를 트는 게 낫죠. 관객과 눈을 마주한 채 이야기를 나누면 작품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돼요. 저의 이런 방식이나 활동에 대한 여러 비판이 있어 왔지만 ‘진지하지 않다'란 비판은 없었어요.(웃음) 전 제 마음을 따라가요. 시스템에 함몰해 매니저가 시키는 대로, 개성과 자유를 존중받지 못한 채 활동하고 싶진 않아요. 아티스트로서의 자유가 중요해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그런 의미에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는 폴란드 태생이지만 파리에 정착하며 숱한 명곡을 탄생시킨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쇼팽이다.

“베토벤 없이는 못 살 정도였다가 열 살 때 쇼팽을 발견하고선 너무 신기했어요. 베토벤, 모차르트, 슈만 등 모든 위대한 작곡가들이 누군가의 영향을 받았는데 쇼팽은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았으면서도 후세에 드뷔시, 재즈, 쿠바음악 등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잖아요.”

과거 아랍에미레이트 아부다비에서 ‘쇼팽의 여행'이란 주제로 연주회를 개최했을 때 프랑스의 유명 평론가가 쓴 “리디의 연주 스타일은 예민하고 수줍음 많으며 미묘한 쇼팽의 특성과 너무 잘 부합한다”는 평을 아직도 마음에 품고 있다.

“시대가 바뀌며 피아노 소리가 점점 커졌어요. 쇼팽도 ‘왜 피아노를 때리고, 도끼질하는 것처럼 치느냐'고 말한 적이 있어요. 클래식 음악세계에선 전체적으로 피아니스트들이 건반을 세게 두드리는데 열정적이라기보다 폭력적으로 다가와요. 연주자들이 직접 작곡을 하지 않기에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그래서 연주자라면 피아노 연습뿐만 아니라 심리, 역사, 환경, 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와 공부가 중요해요. 언어도 무척 중요하고요. 전 쇼팽 연주 때문에 폴란드어를 배웠는데 그가 왜 이런 곡을 만들었는지 그제서야 온전히 이해되더라고요.”

그래서 좋아하는 연주자들도 자신이 작곡한 것처럼 연주하는 이들을 추앙한다.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 쇼팽 스페셜리스트인 알프레드 코르토와 클라라 하스킬,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가 그 리스트다.

리디 솔로몽의 한국인 어머니는 프랑스 유학 중 파리장과 결혼, 사업가로 활동 중이다. 심장외과 전문의인 아버지는 루마니아계 유대인 프랑스 사람이다. 한국인의 열정과 호기심, 유대인의 지혜, 프랑스인의 감성과 낭만을 소유했다고 자부한다.

“저 만큼 많은 피가 섞인 사람도 드물 거예요.(웃음) 프랑스, 한국, 멕시코, 이탈리아, 쿠바 등에 가면 현지인 같단 소리를 들어서 가끔 헷갈려요. 다양한 종교적, 문화적 영향을 받았다는 건 큰 축복이죠. 전 여전히 내 스타일을 찾고 있어요. 목표는 가능한 한 넓고 깊게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거고요.”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그는 11세 때부터 열정적으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반갑다 논리야'를 탐독했다. 모국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들며 스스로가 한국인으로 느껴졌다. 10대에는 외가 친척들을 만나러 한국에 들렀고, 20대가 돼서는 2000년대 초반 지휘자 금난새와 함께 몇 차례 협연 일정 때문에 방한했다.

“옛날에 공연도 했으니까 추억이 있어 한국 활동을 다시 하고 싶어요. 프랑스에서 이미 해오고 있는 연주, 연기, 토크 콘서트, 토크쇼 등을 한국 스타일에 맞춰서 해보고 싶어요. 내면이 부글부글 끓는 중이에요.”

쇼팽처럼 전례 없는 길을 걸어가는 미나(한국이름)의 가을이 조금씩 진하게 물들어가고 있다.